사는 이야기/남산이야기

삶이란?

후암동남산 2021. 7. 12. 23:41

사는 것이란 삶이라 하겠습니다.

삶은 사와 람이 하나로 묶여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사는 것이란 삶이자 삶의 드러남이니 인생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인생을 겪는 과정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의 본질을 살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성찰을 하여야 하는 데 이를 BC4에 소크라 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하였고.'

조계종 종정이셨던 성철스님께서는 '자기를 바로 보라.' 하였습니다.

 

자기를 바로 보고 너 자신을 알기위한 작은 작업으로는

가볍게는 매일 일기를 쓰는 하루의 작업에서 찾을 수 있지만

일상으로는 BC5경 공자의 제자인 중국의 증자께서는 '一日三省'(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몸을 살핌)이라하여

자신의 몸가짐을 성찰 하도록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성찰의 결과는 자신의 본질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첫번째의 관문이지만

관문에 들어서는 순간 지속적인 성찰을 통해 자기의 심연을 확인하는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깊어짐에 따라

자신이 얻어지게 되는 본질을 깨닫는 순간은

플라톤에 의해 표현된 이데아의 세계와 그림자의 세계의 벽(경계)을

뚫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경계가 뚫리는 그순간을 동양적 사고로 표현할 때

이 순간을 돈오라 하였고

깨달음(득도)의 순간이라 하였고

천인합일의 경지이자

절대자와의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며

모든 것과 함께할 수 있는

물아일체의 경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에 오르면

원효스님의 무애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경계를 아우르는

무애의 사상을 이해 할 수 있으니

우리의 삶 역시 경계가 없는

이데아와 현실(그림자)의 세계를

아우르면서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삶은 기독교의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으로 무화과를 먹기전의

뱅의 유혹을 알기전의 삶을 살아가는

아담과 이브의 삶이 되는 것이 아닐 런지요.

만일 그렇다면 거울에 먼지가 끼기전의 모습은

속세의 무애의 삶을 행동으로 실천하였던

원효스님의 무애의 삶이 아닐까요. 

 

우리가 아는 삶이란

원효스님의 무애의 삶이

우리가 진정한 인간으로서 실천하며 살아가야할 것이고

이를 플라톤은 철인이란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