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남산이야기

왜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하였을까?

후암동남산 2021. 10. 31. 11:45

왜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하였을까?

 

고대 아테네를 거쳐

중세와 근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의 혼란은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인간들의 욕심에 의해

공동체가 구성된 이래

더불어(함께)라는 공동체의

모두가 더불어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는 개념을

지키지 못하고

공동체 내에 공동체인들이 자신을 보호받기 위해

국가라는 틀의 일원으로 국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양도해 준 것을

 

일부의 권력과

금권과 무력의 야욕을 가진 자들이

기득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공공의 이익이라는 의()가 아닌

거짓의 의() 양고기를 팔겠다 하고서 개고기를 파는 자.’

자신의 이익과 집단의 이기를 위한 탐욕을 채우기 위해

공동체가 믿고 양도한 권리를 그들만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이 맡긴 법()의 운영이

공동체를 위한 윤활제로 활용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들의 이익과 자신들의 불법을 합법화하는 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신들만을 위한 법운영을 한 것이다.

 

법을 가지고 운영을 할 때

법의 잘못된 운영은

국민들에게 잘못된 판결 결과가

대한민국에서는 잘못된 것이 용인되는 사회인가 의심하면서

잘못된 것이 행해도 된다는 결과가

공동체 사회에서 가치 혼란을 가져올 수 있고

또한 불법이 합법화되는 과정이 오랜 시간 인정될수록

사회는 더욱 더 부패되어 갑니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아테네의 이러한 부패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권력과 돈 그리고 무력에 대해

초연한 사람이 공동체를 다스린다면

그의 다스림은 진리 즉, 선함과 정의에

근본한 공동체 생활이 운영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었을까?

 

플라톤은

당시 아테네의 아픔인

소크라테스의 사망의 충격은

결국 정치인과 법조인들의 무지함과

그들의 도구로 사용되는 법과

이것을 운영하는 이들이 도구와

도구인의 역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도구를 활용한 도구인들의 기득권화 되는 과정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아닐까?

 

작금의 대한민국은

마치 플라톤이 생존한

아테네의 사회상과 같은

모습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도구와 도구인들이

국민들의 권리를 모두 총괄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시대라면

이미 대한민국은 가치의 혼란과

선함과 정의가 이미 공동체에서

사라진지 오래된 국가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시대를 다스려야 하는 자는

법조인 즉 도구인들이 아니라

철학을 가진자로서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정확히 챙기며

국민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주고

의무를 이행하도록 자상하게 알려주고 교육을

해 주는 것을 아는 이가 되야하지 않을까?

 

현재의 대한민국

그나마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포괄적 의미에서

어느 정도 보호되는 것은

통치자가 무력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세밀한 부분으로 살펴보면

이미 대한민국은 공동체의 기본이

법조계와 감사원이라는

국민을 위한 도구기관이 도구로서의 역할이 아닌

법과 감사를 통한 권력의 행사로 인해,

 

국민이 아닌

기득권을 보호하는 선봉대가 되다 보니

그 피해는 국민이 입게 되는 것이고,

국민을 탐하면서 국민을 탐하지 않는 것처럼

언론으로 거짓 포장하여 외양은 양고기지만 속은 개고기인 것을

아닌 것처럼 도배질하는 것은

언론 또한 정의의 파수꾼이 아닌

도구인들과 함께하면서

국민을 속이는 자들로 그들만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국민 앞에선 도구인들의 전방의 사기꾼들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고대의 아테네와 같은 상태가 아닐까?

 

이제 대한민국을 올바르게

관리할 관리책임자로서

선함과 정의를 일으킬 수 있는

진리의 철학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될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신적인 부패가 창궐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이러한 정신적 부패를 막지 못하고 극복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전진이 아닌 적어도 10년내지 30년의 후퇴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현실

도구가 도구가 아닌

권력자의 행사를 할 정도로

정신의 부패가 극에 달한 세상에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