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남산이야기

[스크랩] 경기 가평 운악산 현등사(懸燈寺)를 찾아서 1

후암동남산 2010. 8. 25. 21:48

 

 

경기도 가평 운악산(雲岳山) 현등사(懸燈寺)를 찾아서 1 

 

운악산 현등사

 

운허(耘虛) 스님의 글씨입니다.

 

          일주문(一柱門) 좌측에는 운악산 현등사에 대한 안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현등사는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 운악산(935m) 중턱에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 말사이다.  신라 23대 법흥왕(540)이 인도에서 포교차 신라에 오신

          마라가미 스님을 모시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로서 우리나라 불교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하며 현등사는 그 후 여러 차례 중창이 있었다.

 

          첫 번째 중창은 신라 말 효공왕 2년(898년) 고승 도선국사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동쪽의 지세가 약함에 여행을 하던 중 운악산의 산세가 빼어나 이곳에 와 보니 옛 절

          터가 있어 새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두 번째 중창은 고려 희종 6년(1210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운악산 중턱에 불빛이 있어

          이를 이상히 여겨 와 보니 절터의 석등과 미륵바위에서 불이 밝혀져 있음을 보고 중창

          하여 현등사라 했다. 

 

          그 후 조선 태종 11년(1411년) 함허득통화상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경내 부도에 함허무준이라고 새긴 명문을 볼 수 있는 등 수 많은 고승들이 머물렀던

          고찰이다.

 

          현등사는 강화 보문사 및 관악산 연주암과 더불어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경기도

          3대 기도성지이고 전통사찰 제46호이며, 향토유적 제4호로 경내에는 경기도 지정문화

          재인 삼층석탑(제63호),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지진탑(제17호), 봉선사종(제168호),

          목조아미타좌상(183호), 아미타회상도(185호), 청동지장보살상(제184호), 지장시왕도

          (제124호), 화엄신중도(제193호),현등사치성광여래도(제125호), 수월관음도(제198호),

          함허당 득통화상 부도 및 석등(제199호) 등이 모셔져 있다.

 

          또한 현등사 삼층석탑에서 도굴되었던 부처님 진신사리를 2006년 삼성문화재단으로

          부터 되돌려 받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봉안되어 중생이 친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눈썹바위

  

삭벽기암(削壁奇岩)이 많은 미륵바위와 병풍바위

 

운악산의 정수(精髓) 미륵바위

 

망경대(望景臺)

 

운악산 정상. 동봉 해발 937,5m

 

코끼리바위

 

빙벽폭포에서 내려오는 옥류에 탁족하고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푼 연후에 2시 30분경 현등사로 향했습니다.  불과 360m 밖에 안

          남았기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는데 현등사 초입에 석종형 부도 2기(基)가 있고 그 옆에

          함허당(涵虛堂) 득통선사(得通禪師)의 부도탑도 보였습니다.

 

석종형(石鐘形) 부도

 

좌측 부도는 연륜이 묻어나는데 주인공을 알 수 없습니다.

 

우측은 보봉당충현지탑(寶峯堂忠鉉之塔)

 

          보봉당(寶峯堂) 충현(忠鉉) 스님은 현등사에 주석하시며 1984년 극락전과 보광전을 개축한

          스님이라 합니다. 

  

함허당(涵虛堂) 득통대사(得通大師) 부도탑.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99호

 

          안내문을 옮겨 봅니다.

 

          『당호 : 함허(涵虛), 법호 : 득통(得通), 법명 : 기화(己和)

          조선 태종11년(1411년)에 현등사를 중창했던 함허대사의 사리탑으로 조선 초기 부도

          양식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함허대사(1376~1433)는 출가하기 전 성균관에서 유학을 익혔고 21세(1396)에 출가,

          22세 때 양주 회암사에서 무학대사에 가르침을 받았으며, 42세(1417)때부터 금강경

          오가해를 강의하였다. 그 후 임금의 명령으로 대자사(大慈寺)에 머물기도 하였고,

          56세(1431)때에 문경 희양산 봉암사를 중건 58세(1433)에 입적하였다.

 

          저술로는 「금강경오가해」2권, 「금강경륜관」1권,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설의」

          3권, 「선종가집과주설의」2권, 현정론」1권, 「함허당 득통화상어록」1권이 있다.

 

          함허대사의 사리탐은 현등사 외에도 그가 주석했던 강화도 정수사, 문경 봉암사,인봉사

          등 네 곳에 세워져 있다.』

 

          조선 태종 11년(1411년) 함허조사(涵虛祖師)가 삼각산(三角山)에서 오신산(五神山)으로

          가다가 운악산에서 길을 잃었는데 홀연히 흰사슴이 나타나 길을 인도하므로 따라가 보니

          백록(白鹿)은 온데 간데 없고 그곳에 옛 전각지(殿閣址)가 있어 크게 중건했다고 합니다.

 

함허당(涵虛堂) 득통대사(得通大師) 부도탑

 

          『2004년 11월 29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된 부도와 그에 부속된 석등으로서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현등사 경내에서 서남쪽으로 떨어진 동암에 있다.
 
          득통탑은 팔각형당형() 부도로서 전체 높이는 266㎝이다.  기단부는 8각형의
          지대석() 위에 8각형 면석()을 2층으로 올려놓았다. 2층 면석 윗면에는 항아리
          받침 모양으로 각출하여 원구형 탑신()을 올려놓았다. 탑신에 세로로 '함허당득통
          ()'이라고 전서로 음각되어 있어 조선 초기의 승려 함허(1376~1433)의 부도
          임을 알 수 있다. 함허는 당호()이고, 법명은 기화()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이 부도탑은 근년에 새단장을 한 것 같습니다.

 

          『득통탑 앞에는 네모난 소형 석등()이 있다. 상륜부(上輪部)만 결실되어 있을 뿐

          나머지 부분은 온전히 보존된 편이며, 높이는 120㎝이다. 하대석()에서 화사부

          ()까지 하나의 석재로 만들어졌는데, 형태상 고려시대의 사주형 화사()

          계통을 전승한 양식이 엿보인다. 지붕돌은 네모난 사추형()으로 경사가 심하다.

          부도 앞에 석등을 배치한 예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불탑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구조이며,

          석등은 조선시대 능묘에 장식된 장명등()과 흡사하다.』

 

          -네이버 백과사전-

 

부도탑을 지나 경내로

 

신라고찰 적멸보궁  영험한 도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절은 순조 23년(1823년) 3월 17일에 대화재가 일어나 관음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는데 고종 28년(1891년) 상궁 하씨가 화주를 맡아 절을 새롭게 중수하였고, 고종

          30년(1893년) 호운(浩雲)과 우화(雨華) 두 스님이 석축을 보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갑니다. ^^

 

섬돌 옆에 '나는 누구인가?' 라는 입석이 서 있습니다.

 

 

          걷어 낸 기와로 문을 내고 섬돌 옆에 조그마한 입석을 세웠는데 거기엔 '나는 누구인가?'

          라는 글을 써 놓았습니다.  잘 안 보이지요?  그러니까 찾아보아야지요. ㅋㅋㅋ

 

         절을 찾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바쁜 일상사에서 망각하고 있던 나의

         주인공을 찾아보는 것이 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럼 안에 들어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만나는 전각이 관음전인데...

 

관음전(觀音殿)

 

          이 절은 극락전(極樂殿)을 중심으로 하여 보광전(普光殿, 관음전)ㆍ지장전(地藏殿)ㆍ삼성각

          (三聖閣) 그리고 요사(寮舍)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곳저곳 살펴보니 대형공사가 이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약사전 등을 신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려 때는 관음전이 절의 중심이었고, 전각 앞에는 중창의 인연이 되었던 옥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관음전(觀音殿)은 보광전(普光殿)이라고도 하는데 1987년 새로 지어 인법당선원

          이라고도 한다 합니다.  'ㄷ'자형 팔작지붕으로 현액(懸額)도 많이 붙어 있습니다. 

 

          불이문(不二門)을 통해서 올라오면 보이는 남쪽엔 보광전(普光殿)을 중심으로 왼쪽엔 보합

          태화루(保合太和樓), 오른쪽엔 운악산현등사(雲岳山懸燈寺)라는 사액(寺額)이 걸려 있고,

          석축(石築)을 통해 들어오는 서쪽엔 관음전(觀音殿), 북쪽엔 한글로 대자대비전이라고 하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안에 들어가 참배를 하려고 했지만 입구가 모두 막혀 있어 불발로 끝났습니다.

  

저 보광전 앞에 걸려 있는 목탁이 Tv에 나왔던 목탁새의 보금자리인 모양입니다.

  

          여기의 기둥에는 목탁이 여러 개 걸려 있습니다.  여기다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라는

          스님들의 따뜻한 배려인 것 같습니다.  벽면에는 2003년 5월 15일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영되었던 현등사 목탁새라는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이 새는 매년 5월 부처님 오신 날 즈음에 찾아와 둥지를 틀고 아기새를 키워 나간다고

          합니다.  지금은 성가해서 나갔는지 없네요.  내년 오월에 오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합태화루에도 목탁이 걸려 있습니다.

 

대자대비전

 

          이 쪽으로 들어오라는 안내글이 있어 방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방만 있을 뿐 있어야 할

              관음전의 관세음보살님을 찾지 못하여 참배는 하지 못했습니다. 

 

 

☞  다음은 극락전으로 안내합니다

  

 

향기로운  불교

 

 

출처 : 향기로운 불교
글쓴이 : 백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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