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원통불법 요체
법문 듣기 (17:11) ☞ 제1절 현기(懸記) 지금까지 말씀드리는 가운데 그때그때 금타 스님의 금강심론(金剛心論)에서 인용도 하고 또는 첨가하여 말씀드려 왔습니다마는 금강심론을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몇 가지만 스님의 독창적인 내용을 추려서 소개하겠습니다. 불교에서 현기(懸記)라는 것은 예언이나 같습니다. 즉 말하자면 당래(當來)에 올 수 있는 모든 것을 예상해서 선지식들이 말씀하신, 멀리 앞을 내다본 당위설(當爲說)을 현기라고 합니다. 懸記(현기) 一. 流通(유통) 世界(세계) 一圖(일도)의 半徑的(반경적)인 現在(현재)의 朝鮮人口(조선인구) 二千八百八十萬(이천팔백팔십만)의 倍數(배수)인 五千七百六十萬人(오천칠백육십만인)의 三乘聖衆(삼승성중)이 因緣(인연) 깊은 七個國人(칠개국인)으로 더불어 輪界的(윤계적)인 精神(정신)의 世界(세계)에 遍滿(변만)할새 後(후)에, 刊行(간행)할 首楞嚴三昧圖(수릉엄삼매도)는 且置(차치)하고 이 ‘一人傳(일인전)에 一人度(일인도)’ 만으로써 法爾的(법이적)으로 菩薩聖衆(보살성중)인 一千八百八十萬人(일천팔백팔십만인) 外(외)에 爲先(위선) 緣覺(연각)과 聲聞(성문)의 二乘聖衆(이승성중)인 三千八百八十萬人(삼천팔백팔십만인)을 度(도)함. 二. 思潮(사조) 法爾的(법이적)으로 萬法(만법)이 持雙(지쌍)일새 合法(합법)과 非合法(비합법)의 二大思潮(이대사조)가 流布(유포)함. 三. 政治(정치) 法爾的(법이적)으로 天地(천지)를 統一(통일)함은 眞空(진공)이오 妙有(묘유)함은 地(지)ㆍ水(수)ㆍ火(화)ㆍ風(풍) 四大(사대)일새 世界(세계)는 四大(사대)의 政治分野(정치분야)로써 組織(조직)됨. 四. 合流(합류) 大衆的(대중적)으로 超凡入聖(초범입성)의 時代(시대)라, 體(체)ㆍ相(상)ㆍ用(용)인 三大(삼대)의 分野(분야)가 本流(본류)에 合(합)함. 五. 主義(주의) 開闢以來(개벽이내) 主(주)로 同軌(동궤)인 過去(과거)의 一千四佛(일천사불)과 未來(미래)의 一千九百九十六佛(일천구백구십육불)이며 從(종)으로 同轍(동철)인 無數億(무수억) 菩薩(보살)의 一貫的(일관적)인 護法主義(호법주의)를 主張(주장)하고 護持(호지)함. 六. 義務(의무) 사람의 功德(공덕)됨이 迷情(미정)을 救(구)함보다 더함이 없으니 이의 ‘一人傳(일인전)에 一人度(일인도)’를 銘念(명염)할지어다. 總報(총보)가 齋同(재동)한 世界同胞(세계동포)여! 同胞(동포)여! 同胞(동포)여! 丁亥(1947年) 正月 念日 碧山閑人 釋 金 陀 告 一. 유통(流通) 세계 일원의 반경적인 현재(서기 1947년)의 조선 인구 이천팔백팔십만의 배수인 오천칠백육십만의 삼승성중(三乘聖衆)이 인연 깊은 7개 국인으로 더불어, 이것은 중국이나 버어마 등 불교국으로서 그 당시를 보아서 말씀을 했겠지요. 윤계적(輸界的)인 정신의 세계에 변만(遍滿)할새 후에 간행할 수릉엄삼매도(首楞嚴三味圖)는 차치하고, 그만 두고라도 이 ‘일인전에 일인도(一人傅一人度)’ 이것은 반야심경과 보리방편문, 오지여래(五智如來) 등의 법문으로서, 한 사람한테 전해서 한 사람을 꼭 제도한다는 서원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써 법이적(法爾的)으로, 법 그대로 보살성중인 일천팔백팔십만인 외에 위선 연각과 성문의 이승성중(二乘聖衆)인 삼천팔백팔십 만인을 제도함. 그러니까 보다 고도한 법문이 아니더라도, ‘일인전에 일인도’만을 가지고도 능히 이렇게 인연 깊은 보살성중은 말할 것도 없고 성문 연각승인 삼천팔백팔십만인을 능히 제도하리라는 서원이 담겨 있는 법문입니다. 二. 사조(思潮) 법이적으로, 법 그대로 만법이 지쌍(持雙)일새, 만법이 서로 의지해 있다는 말은 연기(緣起)의 대요입니다. 만법이 서로 상대적으로 의지해 있을새 합법(合法)과 비합법(非合法)의 2대사조(二大思潮)가 유포함. 연기법에 어긋나면 비합법이고, 연기법에 맞으면 합법이겠지요. 따라서 마땅히 우주의 도리, 이른바 우주의 섭리에 따르면 합법이고, 우주의 섭리에 맞지 않으면 비합법이라는 말입니다. 가사, 자기만 잘 되기를 바란다든가 또는 도덕율을 안 지키고 마음대로 방종한다든가 이런 것은 모두가 비합법이고 우주의 도리 곧 제법이 공이고 본래에 있어서 일체존재 모두가 다름이 없는 진여불성이며 부처와 중생과 나와 남이 본래 하나라는 불이(不二)도리에 입각해서 행동하는 것은 합법적인 것이고 그 이외의, 나와 남을 구별하고 선악시비를 구분하는 것은 비합법이 되는데, 이러한 2대 사조가 유포되고 있는 현대 사조를 의미합니다. 三. 정치(政治) 여기에서의 정치는 세속적인 정치가 아니라 우주를 섭리하는 우주의 일관된 도리를 뜻합니다. 우주의 도리 그대로 천지를 통일함은 진공(眞空)이요, 묘유(妙有)함은 지ㆍ수ㆍ화ㆍ풍 4대(四大)일새, 세계는 4대의, 이른바 구조적인 정치 분야로 조직됨. 삼천대천세계나 우리 인간이나 또는 모두가 다 지ㆍ수ㆍ화ㆍ풍 4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진여법성에 본래로 갖추어 있는 성공덕(性功德)이 성품일 때에는 능조사대(能造四大)고, 작용할 때 곧 공간성을 띠고 상대 유한적인 세계로 나타날 때에는 소조사대(所造四大)라 합니다. 四. 합류(合流) 대중적으로 초범입성(超凡入聖)의 시대라, 체(體)ㆍ상(相)ㆍ용(用)인 3대(三大)의 분야가 본류(本流)에 합함. 이런 점이 금타 스님의 투철한 예지라고 생각합니다. 현대라는 것은 말세니까 깨달아서 도인(道人) 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 아닙니까? 그런데 개인 또는 몇 사람만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이른바 집단적으로 범부를 초월해서 성자가 되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대중적으로 초범입성의 시대라는 이런 말씀이 맞는가 안 맞는가 몰라도 하여튼, 현대인들에게 미래지향적인 소중한 희망과 격려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중적으로 초범입성의 시대라, 그건 왜 그런고 하면 체ㆍ상ㆍ용의 3대(三大)의 분야가 진리의 본류(本流)에 합류(合流)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기신론(起信論)에 체(體)는 우주의 본체요, 상(相)은 우주의 본체에 들어 있는 성공덕(性功德)이고, 용(用)은 활용으로서의 3대(大)입니다. 또 한 체ㆍ상ㆍ용의 3대(大)는 법ㆍ보ㆍ화(法報化) 삼신(三身)과 대응(對應)하면 체(體)는 법신(法身)이요, 상(相)은 보신(報身)이며, 용(用)은 화신(化身)이 됩니다. 그런데 현대가 어째서 대중적으로 초범입성시대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하면은, 과거에는 뿔뿔이 모두가 분석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특히 현대 물리학이 나오기 전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우주가 하나의 도리인 것을 잘 몰랐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현대의 물리학이 나오면서 제법공(諸法空) 도리를 알 수가 있도록 이미 실증적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제법이 공이니까 인연 따라서 잠시간 이뤄진 현상은 시간적으로 본다면 결국 무상(無常)입니다. 다만 순간 찰라도 머물지 않고 전변무상하거니 고유한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시간적으로 고정된 것이 없다면 공간적으로도 있다고 볼 수가 없겠지요. 공간성과 시간성이 없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은 없는 것입니다. 즉 제로(0)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인연 따라서 생겨난 것은 분석하기 전에 바로 본래로 공이라, 색즉공(色卽空)이라는 말입니다. ?? 따라서 그런 도리를 현대 물리학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에너지가 인연 따라 진동해서 전자, 양자, 중성자 그런 소립자가 되는 것이고 또 그런 것이 적당히 결합해서 산소나 수소나 각 원소가 되는 것이며, 다시 결합해서 분자, 성분이 되어서 물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사람이나 어떠한 물체나 에너지의 운동상황, 활동상황인 것이요, 그 에너지가 운동하고 진동해서 무엇이 된다고 하더라도 에너지 자체는 불멸이라고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서 증명한 것이 아닙니까? 에너지는 조금도 감소가 없다는 말입니다. 삼천대천세계가 이렇게 생겨났다가, 우리 중생이 살다가, 다시 파괴가 되어 텅텅 비어 버린다 하더라도 에너지 자체는 조금도 감소가 안 되는 것입니다. 나[我]라는 존재가 업장 따라서 이와 같이 태어나서 그냥 죽어 버린다 하더라도, 몸뚱이는 사라진다 하여도 나라는 순수한 생명체, 말하자면 에너지 자체 곧 불성(佛性) 자리는 부증불감(不增不減)이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도리를 현대 과학도 증명하는 때입니다. 옛날에는 불교만 하더라도 인도에서 중국에 전해지는데 몇 백 년이 걸렸고 우리나라에까지는 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디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세계 방방곡곡에서 곧바로 알아차리는 정보화 시대입니다. 이렇게 문화 문명이 교류되고 교섭하는 때인지라, 또한 현대인은 지성적으로 굉장히 총명합니다. 지금은 유치원생이 하느님이 어떻고 부처님이 어떻다고 저희들끼리 뭐라고 다투거든요. 그걸 보면 참 무섭게 발달된 시대 아닙니까? 따라서 돈오돈수(頓悟頓修)나 돈오점수(頓悟漸修)같은 그런 어려운 문제도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합니다. 체ㆍ상ㆍ용인 3대의 분야가 본체에 합하는 때이니까 말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근본 본체를 떠나서는 바로 살수가 없습니다. 인류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공평하니까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필연적으로 나왔지만 그것이 인간성의 본바탕을 알지 못하고 사랑이 무엇인가, 또는 자연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모르면서 다만 유물론에 입각한 유물변증법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회에서 가장 큰 비극이 무엇인가 하면, 일체 모두는 물질이니 그저 능력껏 많이 생산하고 균등하게 분배하면 된다는 주의입니다. 우리 몸뚱이를 물질이라 보기 때문에 마음 내키는 대로 인간을 수단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성이 무엇인가 하는 인간성을 모른다면 어떤 분야에서도 도저히 바른 생활도 바른 사회도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른 어버이가 못되고 바른 친구도 못되고 더구나 바른 스승이 될 수는 없겠지요. 마땅히 소경이 길을 이끌다가 같이 함정에 들어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 밖에는 참다운 자기를 밝힌 가르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그렁저렁 했어도 살아갔지만 오늘날 절박한 역사적 전환기에는 그렇게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가 그렇게 죄어 매고, 그렇게 조직적으로 얽어맸어도 팔십 년도 못 가서 붕괴되는 것 보십시오. 소비에트(Soviet)가 원자력에 있어서는 미국을 능가할 정도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네들이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유물주의 때문에 결국 붕괴가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도 정치가 혼란스러운 원인이 무엇인가 하면, 정치인들이 투철한 철학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칸트를 배우고 니이체도 배우고 많은 공부를 하였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진정한 실존 철학이 없습니다. 나와 남이 본래 둘이 아니고 우주와 더불어 본래로 둘이 아니라는 생각만 바로 한다면 빗나간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치 분야나 남을 가르치는 스승 입장이나 어떤 분야에서나 자기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불성(佛性)을 투철하게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五. 주의(主義) 개벽(開闢) 이래 주로 동궤(同軌)인 과거의 일천사불과 미래의 일천구백구십육불이며 종(從)으로 같은 길인 무수억(無數億) 보살의 일관적인 호법주의(護法主義)를 주장하고 호지(護持)함이라, 주겁(住劫) 동안에 이른바 과거 장엄겁(莊嚴劫), 현재 현겁(賢劫), 미래 성수겁(星宿劾)으로 3겁을 나누는데, 불경에 의지하면 3겁 동안에 삼천불(三千佛)이 출현한다고 합니다. 과거 장엄겁에 천불, 현재 현겁에 천불, 또 미래 성수겁에 천불로 삼천불입니다. 미래 성수겁이란 성수(별)같이 많은 성자가 나온다고 해서 성수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현재 현겁의 넷째 부처님이고 미륵불은 다섯째 부처님입니다. 개벽 이래 주로 동궤인 과거의 천사불과, 과거 장엄겁 천불과 현재 4불과 합해서 천사불인 셈이고 삼천불 가운데 나머지는 미래의 천구백구십육불이며 종으로 동궤인 무수억 보살들이 일관적(一貫的)인, 보살이나 부처나 모두가 우주의 도리, 진여의 도리에 일관되게 여법(如法)히 따르는 셈이지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오로지 진리 한 길인, 호법주의(護法主義) 곧 진리를 지키는 주의, 진리에 수순(手順)하는 도리를 주장하고 보호하고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六. 의무(義務) 사람의 공덕됨이 미정(迷惰), 곧 무명심(無明心)을 구제함보다 더함이 없으니 이의 ‘일인전에 일인도’를 명념할지어다. 총보(總報)가 재동(齋同)한, 과거 전생에 과보가 똑같은 세계 동포여! 세계 동포여! 세계 동포여! 사실 우리 인간에게 무명심을 없애고 우주 생명의 실상인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깨닫는 일보다 더 귀중한 공덕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