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주역이야기

주역:인간으로 사시겠습니까?...

후암동남산 2007. 8. 15. 21:12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이

서로가 인식주체로서 인식주체를 판단하는 인식대상적 인식주체가 각각이 되는 것이지요.  

 

위의 제 표현이 좀 어렵지요.

죄송합니다.

아마 저라는 인간이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복잡함을 싫어하고 단순함을 좋아 하는 사람이지요.^^ _()_

 

形으로서 보는자 (인식 주체)가 되면

보는 자를 관찰자로 표현 할 수 있겠지요.

보는 자로서 聖人을 지향하는 일반적인 사람을 일반 관찰자로

聖人의 시각으로 바라 보는 자를 표준관찰자로 나누어 볼수 있겠지요.^^

이때의 관찰자의 시각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자로 보는 능력에 따라

극단적 표현으로 다루면 오답만을 찍는 "0"점 짜리부터 "100"점에 이르는

관찰자의 구분이 될 수 있겠지요.^^ 

(다만,관찰자로서 노력을 하면 0점에서 100점에 이르는 과정이 있겠지요.

 이 과정을 거쳐 만점을 맞은 만점자가 누군지 아시죠...

 간략히 찾는 다면 4대聖人인 석가모니.예수그리스도,공자,소크라테스...

 그 외도 많은 분들이 있겠지요.^^)

 

인식주체로서

인식주체와 같은 보는 능력이 있는 보는 자가 인식대상이 될때는

당연히 관찰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보여지는 자를 통찰을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식주체능력을 지닌 인식대상이 보여지는(관찰되어 지는) 대로

자신을 보이면 관찰 되어진 것 그 자체가 "있는 것 그자체"의 인식대상으로서

인식주체에게 보여지는 관계이기때문에 朱子가 언급한 "山川動植之屬"과 동일하다

하겠지요.^^ (이때 비로서 자연과의 합일에서 보는자가 살아 가는 것이 아닐까요._()_)

 

그러나 인식주체능력을 지닌 인식대상이 보여지는(관찰되어 지는)대로

자신을 보이지 않는 경우 인식주체와 같이 인식을 하는 인식대상이 되기 때문에...

보는 자로의 인식주체자는 보여지는 자로서의 인식주체인 인식대상자가 보여 지는 대로

관찰되지 않기에 관찰이 아닌 인식대상을 통찰을 해야 하지요.^^ (이때의 통찰의 의미는

관찰을 바탕으로 인식대상을 살피는 것이지요. 이것을 예측,또는 연기, 원인에 따른 결과 유추...

등으로 표현 될 수 있겠지요.ㅎㅎㅎ(이름하여 미래를 살피는 예언자라 불릴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形으로서 인간이 인간을 관찰한다는 것은 관찰의 능력을 뛰어 넘는 통찰력을 발휘해야 하지요.

통찰력을 지닌 形으로서의 인간은 모든 이를 일반 통찰자로 부르고 통찰력의 점수를 "0"점에서 "100점"까지

로 분류를 한다면 100점의 통찰 능력을 지닌자를 표준 통찰자로 말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形인 인간으로서 통찰자란 일반 통찰자에서 표준 통찰자를 지향하는 존재가 되겠지요.^^

그래서 인간들이 인간미를 느끼는 것은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공감대란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가 서로 일체감을 느끼는 공간이 되기 때문이지요.^^

공감대를 형성 하기 위해선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공감대를 확인해가는 것은 서로간의 의사

소통이지요.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는 벽 또는 돌에 대고 홀로

떠드는 것이 아닐까요... 인간으로서 보는 자이든 보여지는 자이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다면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대화의 단절이란 이미 생물과 무생물로 구분이 도닌 것이기에

대화를 포기하는 이 개만도 못한 게 아니라...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_()_

 

법우님 ...

대화를 포기하셨습니까!!!!!

포기를 하였다면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오늘 하루

법우님들의 하루는

인간으로 사셨습니까?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로 사셨습니까?

오늘도 인간으로서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나무 관세음 보살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