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시 정권 때 국무장관을 지낸 라이스는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상한 대통령’이라고 했다. 아무렴 그때 그 ‘이상한 대통령’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은 손가락 잘라 버리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이 땅의 진보좌파들은 그때의 실패한 꿈을 이번에 완성시켜 보고자 '안(安)을 향한 행진곡'을 합창하며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어게인 노무현’, 그러니까 ‘또 이상한 대통령’ 만들기인 게다. 착하고 순진해 보이는, 다시 말해 어릿광대 세워 놓고 ‘나쁜 일’ ‘못난 일’은 저들이 도맡아주겠다는 심사다. 아무렴 기본적으로 IQ 150을 넘어서는 안철수가 그런 '바보 만들기' 놀음에 호락하게 걸려들까.
안철수가 룸살롱에 가서 술을 마셨니 안 마셨니 등등 허접한 이야기로 각종 매체들이 한참 도배를 하다가 시들해졌다. 입만 열면 ‘철수와 함께 춤을!’ 외치는 민주통합당 경선 후보들 중 누구도 나서서 역성 한 마디 들어주지 않았다.
아직 출마한다고 한 적도 없고,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되지도 않았음에도 안철수에 대한 신화가 하나씩 양파 껍질 까듯 벗겨지고 있지만 말 그대로 시덥잖은 껍질뿐이다. 그다지 많은 일, 큰 사업을 하지도 않았으니 털어 봐야 별로 나올 것도 없을 것이다. 고작 과장되게 알려진 것과 실제와의 차이 정도다.
안철수 양파 까기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출판계에도 알고 보면 참 어이없는 일들이 있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작가, 시인, 저자들 중 독자나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다른 위인들이 있다. 책을 통해 알려진 선하고 양심적이고 심지어 거룩하기까지 한 작가들 중에는 문단이나 출판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한들 책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은 그런 사실들을 굳이 독자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으니 그냥 쉬쉬하고 만다.
유명인들이 방송에 나와 자기 자랑 할 때 시청자들은 그 사람의 실제 삶에 대한 진실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교양, 예능, 오락 프로 보면서 그런 것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일 테니 그럴 바엔 차라리 채널을 돌리는 쪽을 택한다. 하여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실제 그의 삶과 책이나 방송에서의 이야기와 다를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독자들이야 책에 쓰인 대로, 방송에 나온 대로 곧이곧대로 믿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고, 또 굳이 알아서 뭐 득 될 일도 없다.
오히려 프로의 완성도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좀 더 과장하길 유도하고, 없었던 얘기도 지어내기를 강요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어쨌든 프로는 재미가 있어야 하고, 시청자들도 그때마다 뭔가 남다른 걸 원한다. 그게 방송매체의 속성이다. 그러니 주인공의 삶이 실제보다 미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겠다. 거기까진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문제는 그 사람이 그 판에서만 놀지 않고 남의 영역을 기웃거릴 때 불거진다.
안철수도 보통사람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잘난 척하고픈 욕망이 있다. 어찌 보면 인간이 벌이고 있는 모든 행위가 이 잘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걸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일. 불교에서 버리라고 말하는 아상(我相)도 결국 이 잘나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찌 쉬운 일인가. 그동안 안철수가 펴낸 책들을 읽어 본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기실 모범생에게 무슨 꺼리가 그리 많겠는가. 출판사와 방송매체들의 고민도 적지않았을 것이다.
글을 써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글맛 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자꾸 다듬고 그럴듯하게 꾸미려는 습관이 든다는 사실을.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약간의 허상이 가미되어야 재미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안철수는 그동안 스스로 개발한 백신을 솜사탕으로 부풀리는 재미로 살아왔다. 게다가 의사로서의 정상궤도에서 밀려남에 대한 응어리(core complex)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결벽증과 강박증으로 인해 자신의 이력을 지나치게 청소하다 보니 손맛 따라 환경미화까지 한 게다.
그 역시 다른 보통의 사업가들처럼 사업의 규모와 외연을 넓혀 보고자 애썼던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벤처기업을 넘어 대기업 반열에 오르고 싶었을 것이다. 하여 2세 재벌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다른 분야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태생적인 그릇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만만치 않았던 듯. 결국 재벌을 닮기보다는 도덕성으로 자신의 명성을 높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하여 갈 지(之)자 인생 행보를 '융합'이란 단어로 포장해 서울대 교수 자리까지 꿰찼다. 그것이 용케도 새로운 모습을 갖춘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갈망과 오버랩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솜사탕을 ‘무릎팍도사’가 요술을 부리는 바람에 하늘 높이 띄워져 갑자기 뭉게구름으로 뭉클뭉클 커져 버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저마다 그 구름에 온갖 그림을 그려 순식간에 신기루로 만들어 버렸다. 뭐 거기까지도 용납될 수 있겠다. 비록 허상이라 해도 그것으로 위안이 되겠기에 말이다. 헌데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만 정치판에 한쪽 발을 담그는 바람에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오색구름이라도 그것이 비로 땅에 떨어질 때는 현실, 즉 진흙탕이 된다.
좋은 게 좋다? 좋으면 옳다?
한국인들이 잘 내뱉는 말 중에 “좋은 게 좋다”라는 말이 있다. 잘 굴러가지 않고 뻑뻑대는 바퀴에 바르는 윤활유 같은 말이다. 어떤 거래나 청탁, 모략, 협잡할 때 많이 쓰이고 때로는 섭섭함을 달래거나 체념할 때, 상대의 결정을 재촉할 때도 많이 쓰인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선 이 말을 수용하지 못하면 여러 면에서 불이익을 많이 당한다. 문제는 이 말이 논리보다는 감정에 호소한 말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항상 부정, 부패, 불공정 등 부정적인 문제를 자주 일으킨다. 기성세대가 그동안 널리 애용했었다.
그에 반해 요즘 세대들은 ‘좋으면 옳다’는 사고에 젖어 있다. ‘내가 좋으면 그만’에서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이나 일이면 무조건 옳다’는 식이다. 답답하거나 우울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 영웅, 혹은 그 비슷한 대용품이라도 바라게 마련. 정치를 유달리 좋아하고, 정치에 민감하지만 기실 정치적이지 못한 한국인. 이 때문에 매번 속으면서도 혹시나 하다가 또 속는다. 생각조차 남의 것을 빌려다 자기 것인양 착각하고 우기는 맹목성, 뼛속까지 배인 사대성과 주관식 교육을 받지 못한 피지배식민근성의 발로라 하겠다.
엘리트와 스타를 이상야릇하게 혼합한 이미지가 전복을 기대하는 대중심리와 맞닿아 있다.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 정치권에 대한 반발과 조롱으로 엉뚱한 곳에다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하여 ‘닥치고 안철수’인 게다. 그러다가 뒷감당은? 당연히 알 바가 아닐 것이다. 아무렴 저 인간들만 아니라면 김정은인들 어떠랴 하는 다분히 고의적인 화풀이인 게다. 철학적 반문 없이 무작정 추종하는 젊은 세대. 자신은 물론 사회나 국가에 대한 무책임한 행동임을 알면서도 더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흡사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다. 얼마 전, 도올까지 나서 ‘안철수 현상’에 대해 “도무지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기현상”이라며 “안 원장은 이 시점에 한민족에게 내려주신 하느님의 축복이고 우리 민중의 진실 표출의 상징”이라고 극찬했다.
과연 그럴까? 정말 축복이 될지 아니면 더없는 재앙이 될지 두고 볼 일이지만, 오락적 접근에서 시작된 한 개인의 허상에다 수많은 국민들이 정치적 열망을 올인 하고 있으니 인류사에 유례없는 기현상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겠다. 그렇지만 ‘묻지 마 칼부림’이나 ‘닥치고 안철수’나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차라리 코미디로 끝난다면 다행이겠다.
민중은 진지하지 않고 더 없이 잔인하고 비정할 뿐이다
언제부턴가 정치판에서는 대놓고 흥행이란 말을 애용하고 있다. 저들 스스로 정치판을 쇼로 만들어 놓고 국민들더러 함께 깨춤을 추잔다. 그렇게 바람을 잡아 표를 챙기자는 건데, 아무렴 단순하여 부화뇌동을 잘하는 국민들에게 곧잘 먹혀들고 있다. 하여 대한민국은 지금 충동, 감정, 환상에 의해서만 작동되는 감상적 우민정치의 함정에 푹 빠져 있다. '묻지 마 대한민국' '닥치고 대한민국'이다.
누구보다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지닌 안철수를 비상식적이고 감상적인 안빠들이 흡사 사이비교주를 모시듯 에워싸고 있다. 안철수가 상식을 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비상식을 낳고 말았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절대 안 돼요!” 했지만 새누리당으로 환골탈태하여 잘 나가고 있는 데 반해 오히려 민주당만 불임정당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 ‘비상식’이 안철수를 점점 옥죄고 있다.
정당정치. 당 대 당으로 도전하고 견제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헌데 당 대 한 개인? 이게 정상인가? 물론 관객은 너무 흥미진진하다. 진즉에 여당 야당의 상투적인 게임은 대세론으로 인해 흥행이 물 건너 가버렸는데 마침 안철수가 등장한 거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처럼 뜻밖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 흥행 대박이다. 하여 왕초보 안철수를 온갖 명목으로 미화시키고 부추겨 사각의 링에 오르라고 떠밀고 있다. 스파링 한 번 치러 보지 않은 범생을 곧바로 결승전에. 잔인하지 않은가? 국민이라는 이름이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은가?
그는 한번에(그게 며칠, 몇 주가 되든) 한 가지 일밖에 못한다고 고백했다. 집중력이 강한 과학도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헌데 대통령이란 자리는 한번에 수만 가지를 고민하고 처리해야 하고, 때로는 동물적 감각에 가까운 순간적 판단으로 국가 이익을 쟁취해 내야 한다.
과연 그가 해낼까? 그의 몸이 견뎌낼까? 하여 그를 잘 아는 사람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의사 결정권을 지닌 리더는 훈련 능력과 동시에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도 지녀야 한다. 안철수가 지금까지 보여준 일련의 행동으로 볼 때 과연 그런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을지 의아스럽다.
엘리트의 쇄신을 위한 촉매제
지금 한국은 미래를 짓누르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불확실성과 격변하는 세계에서 새로운 지표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를 결속시키고 형성시켰던 가치들 중 상당 부분이 수정되어야 한다. 다음 지도자들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 과연 그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가치 모델을 구현해낼 수 있을까?
한국 사회는 분명 엘리트의 개편을 요구하는 단절과 변동의 주기에 접어들었다 할 수 있다. 상황이 불안할수록, 사회적 재난이 축적될수록 안철수와 같은 촉매자로서의 엘리트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지만, 그들의 인기는 선도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의 역할에 기인한 것이다. 하여 대안적 사회 모델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사 결정 엘리트, 즉 리더들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재고를 요구할 수 있는 촉매제로서는 더없이 귀중하다 하겠다.
많은 비판과 염려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촉매자임에 분명하다. 한데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그에게 촉매자가 아닌 혁명가가 되라고 칼을 쥐어주고 있다. 양념이든 비료든 두고두고 조금씩 뿌려야지 한꺼번에 몽땅 털어 부어 버리면 음식이고 농사고 다 망치게 된다. 썩은 정치, 썩은 땅을 한꺼번에 뒤엎어주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안철수는 촉매제이지 쟁기가 아니다. 그를 링 위로 떠미는 것은 초벌도 굽지 않은 토기를 내돌리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연탄? 조개탄? 아니면 번개탄?
리더는 여러 가지 자질들을 균형 있게 지니고 있어야 한다. 우선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나야 하고, 동시에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추면서 전문적인 노하우를 지녀야 한다. 국민들이 안철수의 망설임에 답답해하며 조급증을 내기보다는 지금이라도 한 발짝 떨어져서 신기루를 걷어내고, 진지한 성찰을 통해 작금의 위기와 그 극복, 생존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촉매제를 자칫 정권교체용 불쏘시개로 한번 쓰고 버릴지도 모를 대선판에 밀어 넣는 일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 만약 실패한다면? 오물 치우기는 서로 미루면서도 휴지나 꽁초는 가차없이 내던지는 게 세상 인심이다. 오염된 촉매제를 누가 돌아보겠는가. 안철수가 답이 아닐 수도 있다.
복(福)도 지나치면 화(禍)가 되고, 운(運)을 거스르면 재앙이 된다. 잠행을 하며 각 분야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척 시간을 끌고 있지만 무엇보다 대선에 뛰어들 수 없음(因果)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더 이상 솜사탕을 부풀릴 일도 없으니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국민 앞에 나서 자신의 소신을 밝혀야 할 것이다.
물론 모든 결정은 반드시 자기가 해야 한다고 했으니, 링에 오르든 말든 오르지 그만이 선택할 문제다. 국민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그만큼 국민도 냉정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안철수 현상'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각 분야에서 훌륭한 촉매자를 많이 길러내지 못한 때문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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