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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을 위해 옷을 벗은 여인~

후암동남산 2012. 9. 13. 07:31

11세기경 영국 코벤트리의 영주의 부인이었던 레이디 고다이바. 남편인 영주 레오프릭의 과도한 세금 징수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자 그녀는 백성들을 위해 남편에게 세금경감을 호소했다. 그러나 이 간청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수치심을 버리고 영지를 나체로 도는 과감한 시위를 통해 남편 레오프릭과 마을 사람을 감동시키고 결국 세금의 경감을 이끌어냈다. 몰래 엿보는 사람을 뜻하는 ‘피핑 톰(Peeping Tom)’이나 ‘고다이바이즘(godivaism)’, 벨기에산 초콜릿 ‘고디바’의 기원이 되기도 한 레이디 고다이바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백작 부인의 이유 있는 누드  

11세기 영국 잉글랜드 중부 지역에 위치한 코벤트리(Coventry). 시끌벅적해야할 광장에는 그 누구도 나와 있지 않고, 마을 전체는 정적에 휩싸였다. 춥지 않은 날씨인데도 마을의 창문은 모두 닫혀 있고 커튼은 무겁게 내려져 있었다. 누구 하나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마을 같았다.

 

그때 마을의 중심가를 향해 말 한 필이 달려오고 있었다. 말 위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여인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타고 있었다. 그녀가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달려 마을을 한 바퀴 다 돌 동안 누구 하나 이 기이한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창을 열지 않았다.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달려온 그녀는 이름난 창녀도 아니었고, 타고난 바람둥이도 아니었다. 그녀는 마을을 다스리는 영주 레오프릭의 부인 레이디 고다이바(Godiva)였다.


 

11세기 영국의 상황

여성의 몸에 대한 호기심과 성적인 코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가장 자극적인 소재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그것이 여성의 몸에 담겨 있는 생명잉태의 이미지가 종족 보존의 본능을 일깨우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선사시대에 여성의 몸은 다산과 풍요를 의미하는 조각으로 만들어졌고 매우 존귀하게 다루어졌다. 여성의 몸이 돈으로 환산되어 상품화 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여성의 몸은 귀중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여겨져왔다. 여성의 몸이 이렇게 헐값에 아무런 의미도 없이 세상으로 마구 나오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역사 속에서 여성이 옷을 벗는 데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성의 몸은 예술 작품에서는 언제나 찬미의 대상이었으며, 여성이 세상을 향해 옷을 벗는 순간은 죽음 아니면 어떤 숭고한 의미 때문이었다.

 

 

프랑스 화가 쥘 조제프 르페브르의 레이디 고다이바(Lady Godiva).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여인이긴 머리로 몸을 가린 채 말 위에 올라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890, Musée de Picardie 소장)


코벤트리의 영주 부인 레이디 고다이바가 벌거벗고 말을 달린 11세기 영국은 복잡한 정치, 경제적 변화를 맞고 있었다.

 

영국은 6세기 이후 유럽대륙에서 건너온 앵글로색슨(Anglo-Saxon)의 나라였다. 그러던 것이 8세기와 10세기에 북유럽 바이킹족인 데인인(Danes)들의 침략을 받아, 11세기 초반은 데인족의 왕인 크누드 1세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데인인들의 영국 통치는 영국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데인인들의 영국 통치는 특히 농민계층의 몰락을 불러왔다. 이전에는 자유농민으로 영주의 땅을 빌려 소작만 하던 농민들의 신분이 데인인들의 가혹한 세금징수에 의해 노예상태인 농노의 신분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농민들은 자고 나면 오르는 세금의 무게에 허덕였으며 신분적으로는 영주에게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속박되었다.

 

런던과 비교적 가까운 지역의 번성한 마을 코벤트리도 영국 전체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코벤트리의 영주 레오프릭은 날이면 날마다 농민들에게 징수하는 세금을 올려대고 있었다. 그가 침략자 데인인이라는 말도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가 데인인들의 가혹한 세금 징수에 발맞추어 세금을 늘려나간 점은 그가 데인인이든 아니든 농민들에게는 침략자로 보였을 것이다.

 

 

알몸의 영주 부인

코벤트리의 가혹하고 잔인한 영주, 레오프릭에게는 그와는 정반대 성격의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그녀가 바로 레이디 고다이바다. 그녀는 6세기 이후 영국에 들어온 카톨릭을 신실하게 믿으며 신 앞에 겸허한 마음을 가진 정직하고 숭고한 여인이었다. 남편 레오프릭이 데인인이라고 일컬어지곤 하는데 비해 고다이바는 당시 데인인들에게 핍박받던 토착민인 앵글로색슨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되고 있다.

 

고다이바는 나날이 몰락해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고 남편에게 과중한 세금정책을 개선해 줄 것을 부탁한다. 신실한 믿음을 가졌던 고다이바는 가난한 농민들이 가혹한 세금으로 인해 굶어 죽어가는 광경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세금을 줄여 영주와 농민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라고 남편에게 충고하였다.

 

그러나 레오프릭은 고다이바의 간청을 귓등으로 흘려들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숭고한 마음을 비웃기도 하였다. 레오프릭은 고다이바의 읍소가 그칠 줄 모르자 그녀에게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농민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진실이라면 그 진실을 몸으로 직접 보이라는 것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나가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그녀가 그토록 호소하는 세금감면에 대해 고려해보겠다고 한 것이었다.

 

에드먼드 레이턴(Edmund Leighton)이 묘사한 레이디 고다이바와 그녀의 남편 머시아의 레오프릭 백작. (1892)

 

 

고다이바는 갈등에 빠졌다. 나체로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일은 오늘날에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11세기경의 신분 높고 신앙심 깊은 백작 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고다이바는 남편의 폭주를 막고 죽어가는 농민들을 구할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그 길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다이바는 결국 남편이 내민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 일은 곧 코벤트리의 농민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언제 어느 때에 레이디 고다이바의 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농민들은 영주의 부인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그녀의 숭고한 뜻을 존중해 농민들 스스로도 큰 결정을 내리게 된다. 레이디 고다이바가 벌거벗고 마을을 도는 동안, 마을 사람 누구도 그녀의 몸을 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마침내 레이디 고다이바가 벌거벗고 마을로 내려온 날. 코벤트리 전체는 무거운 정적 속에서 은혜로운 영주 부인의 나체 시위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호기심을 참을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쯤은 있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영주 부인의 나신이라는 매혹적인 말에 이끌린 코벤트리의 양복 재단사 톰은 마을 사람들과의 합의를 깨고 호기심에 이끌려 그만 커튼을 슬쩍 들추어 마을을 도는 벌거벗은 영주 부인을 훔쳐보았다.

 

그 순간 톰은 장님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것이 숭고한 고다이바의 뜻을 성적인 호기심으로 더럽히려 한 것에 대한 신의 벌이었다고 생각했다. 톰에 대한 이야기는 훔쳐보기의 대명사로 ‘피핑 톰(Peeping Tom: 엿보기를 좋아하는 사람, 관음증 환자)’이라는 말로 전해지고 있다.

 

알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다 돈 고다이바의 용기있는 행동에 마을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남편 레오프릭 또한 놀라고 감동하였다. 결코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조건을 그녀가 받아들이고 행하자 레오프릭은 그녀의 간청을 받아들여 마을의 세금을 낮추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독실하고 신실한 카톨릭 신자로 거듭나 이후 코벤트리를 훌륭하게 다스려 나갔다고 전한다.

 

 

실존 인물로서 레이디 고다이바에 대한 기록

레이디 고다이바의 알몸 시위에 대한 이야기는 코벤트리의 전설로 전해내려와 오늘날까지도 런던 근교 코벤트리에서는 그녀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축제를 열고 있다.

 

레이디 고다이바는 1086년 영국의 왕 윌리엄 1세가 작성한 토지조사부인 둠즈데이북(Domesday Book)에 기록된, 11세기 코벤트리를 다스리던 실존인물 머시아 백작 레오프릭의 아내 고디푸(Godgifu 혹은 Godgyfu)로 추정된다. 고디푸란 이름은 앵글로색슨어로 ‘신의 선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다이바는 이 고디푸가 라틴어식으로 발음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가 12세기에 지어진 엘리 연대기에 나오는 고디푸라는 동명의 인물과 같은 인물이라면, 그녀는 레오프릭과의 결혼 전에 한번 결혼한 적이 있는 미망인이었다.

 

그녀의 남편 레오프릭은 전설에 따르면 데인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앵글로색슨족으로 고다이바의 영향을 받아 매우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고 한다. 그는 아내와 함께 베네딕트 수도회에 많은 기부를 했고 1043년에 코벤트리에 베네딕트 수도원을 건립하는 등 비교적 선량한 통치자였던 것 같다. 어쩌면 전설의 그 알몸 시위로 인해 레오프릭 또한 개심하고 선량해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레이디 고다이바는 남편 레오프릭이 1057년에 죽은 이후 노르만 정복이 이루어지는 1066년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둠즈데이북의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노르만 정복 이후 살아남은 몇 안되는 앵글로색슨의 영주였으며 또한 유일한 여성 영주였다. 그녀는 노르만족의 대규모 토지조사가 이루어진 1086년에는 이미 사망하였던 것으로 둠즈데이북은 기록하고 있다.

 


 

영국 코벤트리에 있는 레이디 고다이바의 동상. 코벤트리에서는 지금도 그녀의 이름을 딴 축제를 열고 있다.

레이디 고다이바의 이야기는 이후 학자와 역사가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거리가 되었다. 숭고한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녀가 행한 알몸 시위가 너무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도 ‘관행이나 상식, 힘의 역학에 불응하고 대담한 역의 논리로 뚫고 나가는 정치’를 고다이바의 대담한 행동에 빗대어 ‘고다이바이즘(godivaism)’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그녀의 이름을 딴 초콜릿도 있다.

 

고다이바의 파격적인 알몸은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뜻깊은 일이었다. 요즘의 상품화 되고 있는 많은 미인들의 누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 잠시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