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남산이야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후암동남산 2009. 2. 12. 02:33

2월12일 명동 씨너스에서

5회차 23:10분에 상영하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이란

영화를 보고 들어 왔습니다.^^

 

집사람이 느닷없이 보고 싶다하여

명동으로 나가서 ...

햄버거와 콜라를 먹고서

심야 영화 한편을 보고 왔네요.^^

 

13일은 큰아이 졸업식이라

출근을 오후로 미루니...

오전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13일 새벽 북한산을 갔다 올까 합니다.^^

 

심야영화를 보니

전체의 1/5은 잠을 청한 것 같고

나머지 시간은 집사람과 함께 보고 오니

집사람이 무척 좋아하는 군요.ㅎㅎ

 

오늘은 부친께서도

어제보단 많이 좋아지셨다는데...

오전에 누님이 신문을 갔다 드리니

관심있는 기사를 읽으시다는 군요.

 

다만 먹는 연습을 하던 중

일부가 폐로 넘어 갔는지

왼쪽 폐에 폐렴증상이 보인다는 군요.ㅠㅠ

 

부친께서 좀 더 뚜렷해지는 의식과

가족들의 부친의 조속한 회복을 기대하며

집으로 모셔올 날을 기대하는 만치...

 

부친으로 인한 시간들이 힘들어도

모두가 잘 참아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변화는 과정 속에서

 희망을 놓지 않는 것...

 삶에서 도전과 열정을 지니는 것...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한편의 영화 속에서

되새길 수 있는 글이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 

벤자민 ‘시간’이라는 길 위에 서다

-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을 거꾸로 간다> 리뷰

우리는 삶속에서 부질없는 일인지 알면서도 종종 ‘시간’에게 참 많은 것을 바란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시간을 훌쩍 뛰어 넘고 싶다가도, 나이가 들어 젊음이 그리워 질 때는 다시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어 한다. 또 괴로운 순간에는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기도 하고, 후회스러운 일이 생기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 행복한 순간을 맞고 있을 때는 그 시간이 그냥 멈춰주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들의 그런 바람에는 상관없이 늘 흘러왔던 그만큼 일정하게 우리의 삶을 유유히 지나간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신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이하 <벤자민...>)도 그런 ‘시간’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설정은 대단히 기발하다. 영화는 사람이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아기의 모습으로 죽는다면 그 사람의 삶은 어떨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영화는 주인공이 시간이라는 바다를 유유히 유영하듯, 시간이 주인공의 인생을 조용히 관통하듯 그렇게 한 사람의 독특한 삶을 차분하면서도 부드럽게 그려내고 있다. (데이빗 핀처가 인간의 내재된 분노, 공포, 폭력 등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리쉬한 스릴러에 일가견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번 <벤자민...>은 대단히 이채롭다.)

80대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주인공 벤자민(브래드 피트)은 양로원에 버려진다. 그렇게 버려진 벤자민은 유년시절에는 한 소녀를 만나기도 하고, 청소년 시절에는 성장통을 겪기도 한다. 또 청년이 되어서는 독립을 하기도 한다. 이런 벤자민의 성장과정은 노인의 모습만 아니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성장과정과 유사하다.

             ⓒ  워너브라더스


특히 나이는 20대지만 노인의 모습을 한 벤자민이 2차 대전에 참전하고, 벤자민의 첫사랑이 노인이 되어 꿈을 이루는 장면은 세월 혹은 나이 즉 시간이 흘러 결정되는 사람의 외형이 삶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 결정되는 외형과 나이에 맞춰 스스로를 구속하려는 경향이 있다. 할아버지가 힙합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이 기이해 보이고,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불순해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즉 사회 혹은 관습이 규정해 놓은 세대별 역할로 인해 사람들은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기도, 꿈을 접기도 한다. 어쩌면 ‘시간’은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큰 고정관념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을 쓴 스콧 피츠제럴드은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처음에 오고, 가장 나쁜 것은 맨 마지막에 온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벤자민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 직전의 모습으로 삶을 시작하고, 사람들이 가장 축복해주는 탄생 직후의 모습으로 삶을 마감한다. 또한 벤자민은 생을 양로원에서 시작해 양로원에서 마무리한다.

노인의 외형을 한 아기일 때나 아기의 외형을 한 노인일 때나 벤자민이 보여주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이것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에서 죽음을 맞이한 할머니의 늙어 가는 모습을 점점 아기가 되어가는 모습으로 그린 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을 거꾸로 사는 벤자민과 시간을 바로 사는 데이지(케이트 블란쳇)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그려내는 사랑은 시간의 흐름에 의해 결정되는 외형과는 상관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결국 영화는 삶이란 처음과 끝이 다른 일직선을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시계바늘이 동그랗게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오듯 순회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시간이 거꾸로 가나 똑바로 가나 사랑할 때 사랑하고, 절정을 맞을 때 절정을 맞게 되는 삶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시간은 사람들의 삶에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은 시간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모습으로 살아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우리가 시간이라는 길 위에서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