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과 정치판 (20090725)
단명국! 100수도 안됐는데 바둑판이 망가지고 있다. 포석단계에서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리라. 돌을 던져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일들은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의외로(?) 빨리 정점을 향하고 있다. 어찌 보면 하늘이 알고 있는 예정된 수순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단명국! 바둑에서는 흑백이 끝까지 경쟁하는 계가바둑이 있고, 도중에 일찍 끝나 버리는 단명국이 있다. <先作五十家 必敗>(먼저 50집을 지으면 방심하기 때문에 반드시 지게 된다) <쌈지(작은 집) 뜨면 지나니 大海로 나가라>라는 격언은 우리 생활 속에서도 큰 가르침을 제시하는 격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바둑에서는 <圖南意在北>(남쪽을 도모하는 척하면서 뜻은 북쪽에 있다)이란 일종의 전략적인 표현도 있기는 하다.
인생과 같은 바둑에서는, 무리수와 자충수를 두다 보면 스스로 판을 망치게 되고, 꼼수를 자주 즐기면 긴 승부에서는 이길 수 없게 된다. 단 가끔 던지는 승부수는 국면 전환용으로 필요할 때도 있다. 최근의 정치상황을 놓고 볼 때, 국민의 의사를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작태는 무리수와 자충수, 꼼수에 불과한 한갓 권모술수일 뿐이다. 그렇다면 노무현은 진정한 승부수를 던졌나? 아닐 것이다. 노무현은 스스로 던진 게 아니리라.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승부수가 되고 있다. 한민족사상 최고의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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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나는, 우리 국민 대다수는 다시 3공, 5공 시절의 익숙했던 독재시절로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들곤 한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한 역사학 교수는, 너무 길었던 <일제 식민지 36년이라는 세월>은 급기야 한민족의 주인의식과 자주의식을 빼앗아가 버렸다고 주장한다. 2차대전 당시 독일에 5년 동안 지배당했던 프랑스는 전쟁이 끝난 후 5만여 명의 매국노들을 처형했지만, 우리는 한 세대(30년) 이상 식민지 지배를 받았기에 식민지적 근성이 몸 속 깊숙이 스며들어 스스로 민족의식과 자주의식을 훼손시켰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지적인 것 같다. 민주와 자유, 평등의 참맛을 모르는 식민지적 노예근성은 때로는 현실에 안주하는 저급한 삶인 비자연적ㆍ비자유적ㆍ피동적인 개ㆍ돼지의 삶을 은연중에 받아들이게 된다. 마치 드넓은 초원에서 뛰놀지 못하는 동물원의 하이에나나 사자, 늑대처럼 말이다.
권귀적(권력 귀족적) 기득권층은 세상이 나쁘게 돌아가더라도 자신들의 안정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가난하거나 소외된 계층들은 때론 이유 없이 세상을 비난하기도 한다. 권귀족 귀족층은 내가 손해 보지 않는 일에는 애써 무관심하거나 눈을 돌리고 싶어 하고 한편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논리로 양심을 내팽개치고 자신들의 비겁함과 교만함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배운 정의와 양심, 그리고 도덕을 적당히 그럴싸하게 포장하려고만 한다. 사실은 나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이른바 보수안정 희구세력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는 법이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그들의 도덕의식이 어느 수준에 있느냐는 것이리라. 국민들의 도덕성이 일정 수준을 밑돌게 되면 그 사회는 이기주의와 파벌주의(학연ㆍ지연ㆍ혈연)의 소용돌이 속에서 계층간의 갈등 양상이 극한으로 치닫게 되어 사회는 점차 와해된다고 한다.
국민들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현 정권의 정치행태는 앞으로 두고두고 우리 역사의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1998~2007)의 쉽게 얻은 자유와 민주의 소중함을 몰랐던 식민지적 노예근성이 진정으로 종막을 고하게 되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이 있다. 크게 아프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우리 국민은 지나친 탐욕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이미 큰 실수를 2년 전에 저지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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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노무현 시대 10년 동안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겠다는 간악한 무리들이 있는가 하면, 그 시대의 커다란 가치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어리석고 이기적인 국민들도 있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이명박 정권이 간과한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지난 잃어버린 10년에서 눈에 안 띠게 조금씩 싹텄던 진정한 민주주의 의식이 이제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국민들은 이제야 바르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리 대부분이 잃어버릴 때까지는 그 소중함을 모르는 건강처럼 말이다. 아무리 우리 국민들이 이기적이고 좌파적이라고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모르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명박 정부는 잠자던 민주의식을 깨우쳐 준 점도 있다. 역사를 길게 보면 이것은 고마운 독재일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권의 숙명적 과제이자 갚을 수 없고 갚아서도 안 되는 빚인 4대강사업과 미디어법이 작금에 그야말로 어거지로 진행되고 있다. 이 두 정책은 종부세 인하 정책이나 부동산버블(투기) 조성 정책과 더불어 우리나라 사회 갈등과 정국 혼란의 큰 근원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제대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그런 후에 우리나라는 되돌릴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 것인가? 장담하건대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에 거듭되고 있는 여당의 자충수와 무리수가 판을 스스로 망치게 되는 결과로 다가올 것이다. 그 어느 나라의 정부가 독재정부든 민주정부든 간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어 있다. 2만불 시대를 찍었던 우리나라의 국민 대부분은 이미 경제적인 가난을 벗어난 상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볼 때, 게을러서 가난하게 된 사람들까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절대적 명분은 없지만, 반대로 부정ㆍ부패ㆍ비리로 얼룩진 일부 권귀적 인간들을 옹호해야만 한다는 명분은 더더구나 없다.
정치는 어차피 권모술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권모술수 가운데 일정한 분량의 진정성과 도덕성이 내재되어 있는가라는 점이다. 국민들이 더 나쁘다고 역설했던 지난 2007년 11월의 대통령 선거 사건도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지금은 어떤가? 아직도 나쁜가? 아직도 나쁘다. 좋아지려면 아직 먼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권이 그것이 가까워지도록 돕고 있다. 이 정권의 수명은 앞으로 3년 반 남았지만, 끝까지 갈지 정말 의문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약간 걱정도 된다. 나는 보수적이라 그렇다.
핵폭탄만이 핵폭탄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은 핵폭탄을 하나 더 떠안고 있다. 그들은 정적 노무현이 제거되어 안심하고 싶지만, 국민들 마음속에 있는 노무현의 정신까지는 어쩌지 못하고 있다. 긁어 부스럼 만든 걸까? 분명히 그렇다. 바야흐로 그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노출될 때가 됐다. 나는 올 가을로 점쳐졌던 일부 예언자들의 말이 사실로 이어지길 꼭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명박 정권의 자충수와 무리수가 스스로를 파국의 길로 안내하고 있다. 게다가 연일 꼼수가 난무하고 있지 않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 모르지만, 우리나라가 안정적으로 이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길 학수고대한다. 고교 때 <시련과 극복>이라는 교과목이 있었다. 하늘이 도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정신이 더 건강해져야 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운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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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음양의 조화가 빚어내는 두뇌스포츠이다. 바둑판은 인생사와 비슷하다. 위정자들이여! 우리 국민들의 바둑실력을 간과하지 말라! 너희들의 짧은 수명을 재촉하지 말라! 그러나 이러한 충고(?)는 한갓 메아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대신 불도저의 굉음만이 우리 귀를 괴롭힐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개과천선함으로써 이미 예약되어 있는 단명국을 취소시키기에는 때가 너무 늦은 것 같다. 과욕과 교만에 사로잡힌 여당은 돌을 깨끗이 던지고 판을 새로 짤 수 있는 용기가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인생의 축소판인 바둑을 좋아한다. 이제 바둑의 교훈을 되새겨 본다. 한동안 끊었던 바둑을 다시 두게 될지도 모르겠다. 착실하게 정석공부를 하면서 멋있는 바둑판을 만들어 볼까? 치사한 꼼수나 과격한 무리수는 줄이고...ㅎㅎㅎ
중복이 지났다. 시나브로 가을이 다가오면 미풍을 느끼고 싶다. 친구와 더불어 신선한 미풍을 맞이하면서 평상에서 두 다리를 쭉 펴고 바둑 한 수를 즐길 기회가 있을 런지... ^*^
------- 20090725 16:52 포월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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