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남산이야기

역사속의 거짓은 망조의 역사를 만든다.

후암동남산 2022. 8. 26. 08:26

역사속의 거짓은 망조의 역사를 만든다.

역사적으로 조작과 모략이 난무한 한반도는

스스로 망조의 길을 걸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라는 현실적인 기준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기준이란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러나 기준이 혼란스럽다면 이미 기준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은

기준의 혼란 속에 무엇이 거짓에 기반이 되고

참에 기반이 되었는지를

국민들에게 알지 못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몇 년간의 대한민국은

공정과 정의가 참이라고 하면서 맹공을 퍼붓다가는

시간이 흘러가면 맹공을 퍼부었던 그들이

무엇이 참이었고, 무엇이 거짓이었는지 스스로 알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국민들의 판단기준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공정과 정의를 외치던 그들의 주장이

마치 사막 위에 세워진 모래탑이 태풍에 의해 사라진 것처럼

맹공했던 그 시간 이후의 모습은 언제 그랬냐하듯이

그때의 그 사건들이 사라져 보이게 만들고 있다.

현실 속에 현재진행형의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들의 진행 상황은 계속되고 있는데

국민들에게 진행되고 있는 결과가 참으로 가고 있는지,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공정과 정의로 주장했던 그들의 것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지금은 동일한 사건과 사태와 같은 것에 대해

과거에 나라를 들썩일 정도로 공정과 정의로 난리를 치던 그들도

전혀 나타나지 않고

또한 초기에 그 많던 보도도 없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그때는 공정과 정의가 있고

작금에는 공정과 정의가 사라졌는지

전혀 거대한 반응을 일으켰던 그들은 사라지고

나타나지를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 난리를 치던 그 시간 속의 공정과 정의는 중요했고

작금의 공정과 정의는 중요하지 않거나 사라졌는가?

대한민국은

거짓의 난무로 인해 가치의 혼란 속에

공정과 정의를 드러냈고

공정과 정의를 주장하던 자들이

공정과 정의라는 가면 속에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고

정권을 잡기에만 혈안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때의 공정과 정의는 인위적인 난리법석이었던 것인가?

도산 안창호에 의하면

거짓이 조선에 오적을 낳았고

거짓으로 인해 한일합방 조약을 맺게 되어

일제36년이라는 치욕적인 기간을 지냈다고 일설을 하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도산 안창호가 조심하라던 거짓의 힘에 대해

또다시 과연 어떤 대처를 하고 있는가?

거짓이 공정과 정의의 탈을 쓰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대한민국에 공정과 정의라는 거짓의 탈을 잘 만들어 씌워주었던

멋진 도구가 없었다면 국민이 속을 수 있었을까?

국민을 위한 도구인데

국민을 속이는 도구로 활용되는 것은 언론과 법이라는 것이 아닌가?

개인의 사고(생각)의 결과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결국 믿을 수 없는 인간이 문제이긴 하지만

문제있는 인간들조차 괜찮은 인간으로 멋지게 덧칠해주는 것이 언론과 법이 아니었던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공정과 정의라는 탈이 거짓이었던가 아닌가에 대해

반드시 성찰을 해봐야하지 않을까?

그래야 공정과 정의가

거짓의 탈을 쓰고

대한민국을 휩쓸던 시대를 후대가 기억을 할 수 있었야 하고

국민들이 과거의 성찰을 통해

바람직한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