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주역이야기

주역에서 자기모습을 투영한 이는...

후암동남산 2007. 7. 21. 17:51

우리는 흔히

形而上學 이란 단어에는 익숙해 있지요.

그래서 形而上이란 단어는 쉬 이해되는 듯하지요.

그러나 形而下란 단어에는 익숙하질 못해 생소한 느낌이 들겁니다.

다만 웃음으로 세속에서 허리하학이란 속어를 가끔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形而下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 形而上과 形而下란 단어는

"周易"(주역)의 繫辭傳(계사전)上 12장에 기록되어 있지요.

"形而上者 謂之道也, 形而下者 謂之器也"라고

이 단어의 구성을 펴본다면

上而形而下(상이형이하)로 되며

이때 形은 上과 下를 어우르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形을 形象이 있는 것들 가운데

생각을 하고 인식의 주체가 되는 대상들 중 사람만을  形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形은 인식의 주체이자 인식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인식의 주체로는 판단을 하는 자, 관찰을 하는 자가 되지만

 

인식의 대상으로는  

인식주체자 자신이

인식 대상으로자신을 살피는 자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인식주체자 자신이 자신과 자신이외의 상대적인 대상들을 살피게 되기도 하지요.

 

따라서 上而形而下는

上而形 즉,形而上 과 形而下로 살필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形而上의 上은 앞서 인식주체자로서 形을 서술했듯이

인식주체인 (사람)보다 위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것으로,

절대자

法界

虛空界(空)  ... 등으로 살필수 있으며, 이를 無形界로 이름 지어보기로 합니다.

 

인식주체인(사람)보다 아래에 있는 것은

형상이 있는 것으로

사람과 動植物 과 鑛物 ,미생물 등 보이는 모든 것으로, 이를 有形界로 이름 지어 보기로 한다.

 

따라서 주역에서 자기 모습을 투영한 인식주체로서의 形은

無形界와 有形界의 경계에 있는 경계적 존재이자

이 두 경계를 맺어 주는 역활을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儒學에서

이 두 경계를 맺어 지는 것을 天人合一이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道通이라 이름 지어지는 걸까?

왜냐하면 形而上者 謂之道也라 하기 때문 아닐까? 

 

오늘도 인간에 대한 의문으로 이시간을 달려 보내요. ^^